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유일한 4할 타자로 기록된 백인천은 화려한 선수 생활과 달리 노년기 가족사는 안타까운 사연으로 자주 조명됐어요. 두 번의 이혼과 세 아들과의 단절, 이후 수양딸에게 당한 사기 피해까지, 알려진 사실을 정리해볼게요.
일본인 첫 아내와의 결혼과 이혼
백인천은 1967년 1월 일본인 여성과 첫 결혼을 했어요. 이 결혼은 약 15년간 이어졌고, 그 사이 두 아들을 낳았어요.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동하던 시기와 맞물린 결혼 생활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하지만 이 결혼은 결국 이혼으로 끝났고, 백인천은 이후 재혼을 했어요. 두 번째 결혼에서도 아들 한 명을 얻었지만, 이 결혼 역시 이혼으로 마무리됐어요.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거치면서 백인천은 총 세 명의 아들을 두게 됐지만, 이혼 이후에는 자녀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가족과의 연이 끊긴 상태로 지내게 됐어요.
이혼 이후 가족과의 단절
백인천은 방송 인터뷰 등을 통해 이혼 후 가족과 연이 끊겼다고 직접 밝힌 바 있어요. 화려했던 선수 시절, 그리고 감독으로서도 이름을 날렸던 그였지만, 노년에는 곁을 지켜주는 가족이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거예요.
세 아들이 있었음에도 실질적인 교류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 여러 보도를 통해 확인됐어요. 이혼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이 자녀들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지만, 구체적인 단절 경위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어요.
가족 없이 지내는 노년의 어려움은 백인천이 이후 뇌졸중 등 건강 문제를 겪을 때 더욱 부각됐어요. 곁에서 돌봐줄 가족이 없다는 점이 여러 매체를 통해 안타깝게 조명됐어요.
수양딸에게 당한 사기 피해
가족과 연이 끊긴 이후 백인천은 한 수양딸을 만나게 됐어요. 혈연 관계는 아니지만 딸처럼 의지하며 지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수양딸이 오히려 백인천에게 경제적 피해를 입힌 것으로 전해졌어요.
보도에 따르면 이 수양딸은 백인천의 전 재산에 해당하는 예금을 챙겨 떠난 것으로 알려졌어요. 가족의 돌봄이 없는 상태에서 의지했던 인물에게 오히려 사기를 당한 셈이라, 이 소식이 알려졌을 때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표했어요.
이 사건은 뇌졸중(뇌경색)으로 건강이 악화된 시기와 맞물려 발생하면서, 노년 스포츠 스타의 고독과 그로 인한 취약함을 보여주는 사례로 여러 매체에서 다뤄졌어요.
야구선수와 감독으로서의 커리어
백인천은 일본 프로야구와 한국 프로야구(KBO)를 모두 거친 선수예요. 특히 한국 프로야구에서 시즌 4할 타율을 기록한 유일한 타자로 남아 있는데, 이는 지금까지도 KBO 역사에서 깨지지 않은 대기록으로 꼽혀요.
선수 은퇴 후에는 감독으로 활동하며 지도자로서도 이름을 남겼어요. STATIZ 등 야구 기록 사이트에도 그의 선수 기록과 감독 경력이 상세히 남아 있어, 한국 야구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로 평가받고 있어요.
화려한 선수·감독 경력과 대비되는 노년의 가족사가 함께 조명되면서, 백인천이라는 이름은 야구 기록뿐 아니라 인생의 굴곡을 함께 이야기할 때 언급되는 인물이 됐어요.
2026년 별세
백인천은 2026년 8월 15일,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어요. 화려했던 선수 시절과 대비되는 쓸쓸한 노년을 보낸 그의 마지막 소식은 여러 매체를 통해 전해지며 다시 한번 그의 삶을 되돌아보게 했어요.
그의 별세 이후 언론에서는 4할 타자라는 전설적인 기록과 함께, 이혼과 가족과의 단절, 수양딸 사기 피해로 이어진 노년의 사연을 함께 조명하며 그의 삶 전체를 다시 짚어보는 기사들이 이어졌어요.
백인천의 이야기는 화려한 커리어 이면에 놓인 개인의 고독한 노년을 보여주는 사례로, 스포츠 스타의 삶이 은퇴 이후에도 다양한 굴곡을 겪을 수 있다는 걸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사연이에요.